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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sapali
ㆍ작성일	2016-01-12 19:01
ㆍ분 류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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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치적 목적 위해 ‘난민 혐오’ 난민 지원 일선에 서있는 공익법센터 ‘어필’ 이일 변호사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진실의 전부일까.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난민들은 전쟁과 폭력, 박해와 차별, 굶주림을 피해 온 이들이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수많은 쿠르디를 몸소 겪어 왔고 그 자신도 쿠르디와 같은 인간이다.

“쿠르디의 사진을 보고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전에 이미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죽었다. 난민들이 직접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면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하다. 도무지 눈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 많은데, 그분들 얘기로는 자신들에게는 너무나 일상화된 일이라고 한다. 이미 그들은 정신적 외상을 안고 있다.”

2015년 9월 2일(현지시간) 아침 터키 남서부 물라주(州) 보드룸의 해안에서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 아일란 쿠르디(3)의 시신을 터키 현지 경찰이 수습하고 있다. 쿠르디는 보드룸을 떠나 그리스 코스섬으로 향하던 중 에게해에서 배가 침몰해 익사했다.
2015년 9월 2일(현지시간) 아침 터키 남서부 물라주(州) 보드룸의 해안에서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 아일란 쿠르디(3)의 시신을 터키 현지 경찰이 수습하고 있다. 쿠르디는 보드룸을 떠나 그리스 코스섬으로 향하던 중 에게해에서 배가 침몰해 익사했다.ⓒ뉴시스/AP
“난민들에게 누군가의 죽음은 일상화돼 있다”

난민 지원의 일선에 서 있는 사단법인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 소속 이일(34, 사법연수원 39기) 변호사는 직접 난민들을 상담해 보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욱 잔혹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끔찍한 사진들보다 마치 우리 아이가 잠들어 있는 것과 같은 평범성에서 더 동질감을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난민들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영혼이 병들어 있고 힘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와 있는) 난민들도 실시간으로 시리아 소식을 듣고 있고 폭격당하는 것을 본다. 지역마다 일주일 사이 사망자 리스트가 뜨는 것을 접하고 자기 친척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보고 있다.”

이러한 삶의 파국은 난민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도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그들이 떠안는 짐의 크기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체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고 이일 변호사는 말한다. “한 명, 한 명의 사연들이 전쟁이나 정치적 불안 등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개인에게 책임을 전혀 돌릴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커다란 파국이 삶에 닥쳤고, 그 피해를 자신들이 모두 짊어지고 있다. 그 짐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과는 간극이 크다.”

경계에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난민

‘어필’ 소속으로 올해 4년차인 이일 변호사는 난민 지원 활동의 현장에서 밤낮없이 바쁘다. 그의 상시적 지원 대상에 포함된 난민 수는 20명 정도. 그들을 직접 만나 상담을 하고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상황을 점검한다. 자료도 꼼꼼히 조사해야 한다. 연대단체와도 꾸준히 만난다. 변호사로서 소송 관련 업무는 당연히 기본이다. 집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도 일은 계속된다. 새벽 3~4시에 눈을 붙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그는 일 자체는 보람차기 때문에 충분히 감내할 수는 있다고 말한다.

이일 변호사가 처음부터 난민 이슈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2013년까지 군 법무관으로 복무하는 과정에서 “막연하게 소수자들을 도울 수 있는 공익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의 판·검사나 변호사로서의 삶은 “뻔히 보이는 길”이라는 생각에 크게 흥미는 없었고 체질에도 맞지 않았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마이너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소회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어필’이었다.

난민 이슈를 처음 접한 것 ‘어필’에 들어온 이후였다. 처음 들어선 세계에 당혹감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돼 있는 아프리카계 난민 신청자를 만났는데 말이 안 통하더라. 잘 알아들어야 도울까 말까 하는데. 혼란스럽고 긴장한 상태에서 임했던 기억이 난다.”

70일간 공항 송환대기실에서 오고가도 못하며 햄버거와 콜라로 끼니를 때웠다는 ‘한국판 터미널’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례이다. 국가와 국가의 경계에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존재가 난민들이다. 이일 변호사가 2014년 만난 한 시리아 난민도 이러한 신세였다. 내전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터키로 넘어왔던 이 난민은 터키 내 반(反)이민정서가 심해지자 한국을 거쳐 독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국 공항에서 여권에 문제가 생겨 발목이 묶였다. 한국 정부는 시리아인을 터키로 돌려보냈는데, 터키 정부는 다시 한국으로 떠넘겼다. 변호사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에서 누구도 환영하지 않고 서로 토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가련한 시리아인이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 난민은 결국 경기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갇히게 됐고, 겨우 상황을 알게 된 이 변호사가 통역과 함께 그를 만났다. “이 나라, 저 나라로 토스되다가 화성 보호소까지 오는 과정에서 자기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시리아로 송환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 변호사가 당시를 떠올렸다. 시리아인은 ‘다행히’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

공익법센터 어필(APIL) 이일 변호사
공익법센터 어필(APIL)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APIL)' 제공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 법적으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난민 신청자들을 피의자로 간주하면서 수사하듯 심사를 한다. ‘난민인 척하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한 조사이다. 사실상 고립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난민 신청자들은 자신이 박해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다. 오직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제대로 된 진술이 나올 수 있을까. 심사자는 “왜 말이 바뀌냐”고 대상자를 거듭 추궁한다.

수치도 현실을 보여준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한국이 1993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 협약)에 가입한 이후 1994년부터 2015년 11월까지 난민 신청자 수는 1만4천478명이다. 하지만 이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534명으로 난민인정률은 3.69%에 불과하다. 2013년 기준 전 세계 평균 난민인정률(RRR) 32%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난민 지위도 사실 이 변호사의 표현을 따르자면 “쫓아내지 않는 수준”이다. 그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대다수는 언제든 다시 전쟁이나 박해의 현실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감내해야 한다. 최근 시리아 난민을 중심으로 ‘애매한’ 신분인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된 인원이 급격히 늘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이 역시 2015년 11월말까지 총 903명(법무부 통계)에 불과하다. 특히 이들에게는 ‘취업 허가’ 말고는 보장되는 어떠한 권리도 없다. 기초생활수급자도 될 수 없고 의료보험도 가입할 수 없다. 이들이 한국에서 낳은 아이는 등록도 안 돼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일정 정도 해소하기 위한 난민법 개정안들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난민인정심사 절차 개선, 난민지원기본계획수립 의무 명시,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난민과 그 자녀의 권리, 인도적 체류자의 권리 등과 관련된 총 10건의 법안이 계류돼 있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이들 법안이 국회에서 적극 논의되고 처리될 수 있도록 입법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특히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정부·여당이 테러방지법 제정을 밀어붙이면서 분위기가 오히려 악화됐다.

정부는 ‘테러방지법 제정’ 밀어붙이며 ‘난민 혐오’ 조장
“난민들에게 얼마나 큰 폭력과 인권침해인지 생각해야”

앞서 쿠르디의 사진은 그나마 현실의 일각을 보여주면서 ‘난민 수용 쿼터 확대’ 등 각국의 난민 정책에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파리 테러 이후 현실은 거꾸로 돌아간다. 이 변호사는 “테러와 폭력의 위협을 피해 온 난민들이 오히려 ‘테러리스트’로 몰리면서 두려움에 떠는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국가정보원까지 나서 ‘난민 혐오’와 ‘테러 위협’을 부추겼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지난해 11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시리아 난민 200명이 항공편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국민 10명이 IS(이슬람국가)를 지지한 사례를 적발했으나 관계 법령 미비로 인적사항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밀어붙이기 위한 정치적 목적 하에 이뤄진 일로 해석되고 있다.

국제 테러조직 연계단체를 추종한 외국인 3명이 국내에 머물다 강제 추방됐다거나 외국인 범죄를 부각시키는 언론 보도들도 쏟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직접 “테러방지법이 없는 것을 IS도 알아 버렸다”며 테러 위협을 조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뉴시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경찰이 대구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 수염 기른 사람들을 상대로 호구조사하듯이 추궁한 일도 있다. (당사자는) 수염 깎으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한다. 수염 긴 사람들을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외국인들은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간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잡혀갈까봐.”

이 변호사는 “정부가 (테러방지법 제정이라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국인 혐오를 조직적으로 양산하고 테러 위험을 억지로 부풀리면 되겠나”고 비판하며 “앞장서서 난민에 대한 오해를 풀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국민들에게 불안을 조장했다. 그러니 일선에서는 기운이 빠지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난민과 소수 이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폭력이고 인권 침해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일침했다.

‘무서운’ 대한민국 국민의 얼굴로 나타나는 ‘편견의 벽’
“배제나 혐오의 시선 아니라 일단 낯설지 않게 다가갔으면”

일선에서 난민 지원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정부와 행태와 법무부의 보수적 태도도 힘든 요인이 되지만,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편견의 벽’이 큰 덩어리를 차지한다. 여전히 난민이나 이주민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예컨대 필리핀 이주민 출신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을 향한 밑도 끝도 없는 비난과 욕설도 비슷하다. 이 변호사는 “제도 개선을 하고 잠을 못 자고 일하는 것도 하면 되는데, 시민들의 시선이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유독 자신들과 다른 외국인에 대해선 갑자기 ‘무서운’ 대한민국 국민의 얼굴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정치적 입장과도 상관없이 혐오 발언들이 쏟아진다”며 “더 약한 자들을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냉담한 얼굴과 분노에 찬 시선은 소송 또는 강연을 통해서 해소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아질 수 있겠지만, 난민 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 보복의 위협 등으로 인해 스스로 숨어드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욤비 토나 광주대학교 교수는 매우 특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꾸준히 난민이 처한 현실을 알리면서 ‘편견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을 배제하거나 혐오하는 시선이 아니라, 일단 낯설지 않게 다가갈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