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펫으로 가는 6번 국도, 여행의 밀도
포이펫으로 가는 6번 국도, 여행의 밀도
씨엠립에서 국경 지역인 포이펫을 거쳐 태국으로 넘어가는 유명한 길이 있었습니다. 또는 태국에서 씨엠립으로 들어오는 여행자들도 역시 이 길을 지나와야 했습니다. 그저 '6번 국도'라는 평범한 이름의 길이었지만 여행자들 사이에선 험하고 고달프기로 이름난 길이었습니다. 우기엔 거의 물에 잠겨 있다시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깊은 물웅덩이에 차가 빠지지 않도록 진흙탕 속에서 차의 방향을 잡아주는 일꾼들도 있었지요. 1 달러나 태국 화폐로 20~30 바트 정도를 주면 차가 수렁에 빠지지 않게 길을 잡아줍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현지 사정을 무시하고 그냥 운전하고 가다 수렁에 빠진 차들이 도로에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차는 한동안 쉽게 견인하지 못 합니다. 우기가 끝나기 전에는 말이죠. 그러니 고작 1 달러 정도를 아끼려다가 차를 영 못 쓰게 망가트리는 불상사가 참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연결되는 6번 국도는 현지인들이나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악명을 떨쳤습니다. 지금은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정비되어 세 시간 정도면 이 길을 지나가지만 과거엔 열 시간 이상 걸리던 길입니다.
우기가 되면 농사일도 없고 달리 벌이도 없는 이 지역 사람들에겐 물에 잠긴 6번 국도에서 차를 안내하고 빼주는 일이 제법 짭짤한 수입이 되었을 겁니다. 적어도 위험한 수 십 개의 웅덩이를 지나가야 하니 평균적으로 외국인을 태운 차량 같은 경우엔 수 십 달러를 써야 했습니다. 물론 같은 지역 사람들끼리는 인사말로 값을 치르더군요. 뭐 억울할 일은 없습니다. 차가 진창에 빠지지 않도록 진흙탕 속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길을 잡아주었으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지요.
이제는 배낭여행자들의 전설이었던 '6번 국도'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참 허전합니다. 잘 닦인 도로를 바람처럼 달리며 나는 여전히 과거의 황톳길 6번 국도를 느릿느릿 넘어가던 상상에 머물곤 합니다. 허리가 부서질 것처럼 아팠지만 그때가 좋았습니다. 단 한 건의 교통사고도 없었는데 지금은 고속화 도로가 되어서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로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이 교통사고 목숨을 잃는다 합니다. 그들에겐 아직 낯선 문명이지요.
작은 픽업트럭을 개조해 만든 택시에 사람들이 화물처럼 겹겹이 쌓여 스무 명 정도까지 승차합니다. 그럼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느릿느릿 그들 방식의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길에 서서 붉은 황토를 뒤집어쓰고 사진을 찍고 있던 내게 언제나 한결같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던 크메르 사람들이었죠. 그러나 잘 닦아 놓은 도로 탓에 본격적으로 태국과 캄보디아를 오가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대형 버스들의 난폭 운전으로 학교를 마치고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늘 위협받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도로에서 온갖 이유로 교통 범칙금을 물리고 뇌물을 요구하는 캄보디아 교통경찰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 해마다 이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NGO에서 홍보 대사로 활동했습니다. 수십여 차례 변해버린 이 길을 지나다니며 내가 여행자로 탐험하던 그 시절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어떤 곳은 발전이 오히려 장해가 됩니다. 어떤 삶엔 개발이 오히려 위협이 됩니다. 무엇을 위한 발전이고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요? 평생 대를 이어 6번 국도를 따라 살던 이들의 삶에는 정작 큰 변화가 없습니다. 혜택도 없습니다. 오히려 늘어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들만 더욱 커졌지요.
느리게 간다고 하여 그 끝에 다다르지 못 하는 걸까요? 서둘러서 간다 한들 그 끝에 전혀 다른 것들이 놓여 있었던 적이 있었나요? 빠르게 움직일수록 목적했던 곳에 남들 보다 먼저 도착하기는 하겠지만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속도와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얼마나 빠르지 못 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빈손으로 목적지에 이르는 것보다는 삶을 즐기고 가득 채운 정신으로 목적지에 이르는 것이 더욱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런 걸 간혹 성공한 삶이라고 부릅니다. 그때 비로소 남들이 하지 못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 이미 빠르게 달려와 버린 사람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죠.
삶이 유한해서 서두른다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한하니까 더 여유 있게 가야 합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입니다. 여행도 속도가 아니라 밀도입니다. 내게 사람들이 자주 묻습니다. 당신은 한 장소에서 어찌 그리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느냐고 말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느리게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겐 겨우 한 장소일지 모르지만 내겐 작은 마을 하나조차도 거대한 세상이 됩니다. 여행의 기준은 공간이 주는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내 안의 밀도 있는 의식이 기준입니다. 그러니 여행에 안달이 나고 떠나지 못해 목마르다는 사람들의 여행담을 나는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빈 구멍들이 숭숭 뚫려있습니다. 목적지에 먼저 도착한 텅 빈 영혼들처럼 말이죠.
사진을 한 장 꺼내들면 나는 다시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때 미처 다 알지 못 했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비가 오기 전 열대의 흙냄새, 아이의 기침소리, 흙을 토해내는 낡은 엔진들이 쿨렁거리던 모양이나 적의 없이 바라보던 무심한 사람들의 눈빛들 그리고 종일 걸었던 발가락 사이로 스며있던 땀까지. 나는 늘 이렇게 여행할 것입니다. 유행처럼 조금 걷는다고 해서 느린 여행이 아니라 정말로 느린 여행이어서 결코 끝난 적이 없는 삶의 밀도를 즐길 겁니다. 언젠간 그럼에도 나의 삶은 그 유한한 지점에 이르러 있을 테니 까요. 부디 당신의 삶도 여행도 서두르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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