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stung treng
지금 이곳은 라오스 남쪽 끄트머리의 돈뎃(Don Det)이라는 섬이야. 우기가 한창인 메콩강은 짙은 황톳빛으로 유유히 흘러가고, 여행객들은 강변을 따라 늘어선 목조 방갈로의 해먹에 누워 흔들흔들 시간을 흘려보내는 곳. 자전거를 타고 나서면 아기자기한 논들이 펼쳐지고, 사람보다 갑절은 더 많은 것이 분명한 소, 닭, 돼지, 오리, 고양이, 개 들이 멀뚱멀뚱 나를 쳐다본다.
어둑해질 무렵이면 섬사람들은 사롱을 허리에 두르고 강가에 나가 소와 함께 목욕을 하고, 소나기라도 쏟아질 참이면 비구름을 샤워기 삼아 몸을 씻는다. 자연과 사람,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거나 해치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리고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모종의 합의 속에서 섬은 평화롭고 한가로운 것 같아. 밤이면 무자비하게 달려드는 모기 녀석들과 음식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백만 대군의 개미떼를 제외한다면 말이지만.
그런데 이 섬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만만찮았다. 캄보디아의 끄라쩨에서 국경을 넘어 돈뎃까지 오는 교통편을 예약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거든. 한 봉고차가 나를 가장 먼저 픽업하고는 마을을 한참 돌면서 현지인들을 계속 태웠고, 마을 외곽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봉고차로 갈아타라고 하더라고. 문제는 그때부터였어. 갈아탄 봉고차는 도로 주변의 크고 작은 마을과 도시들을 거치면서 하나 둘씩 계속 사람들을 태우는 거야. 물론 이런 경우는 인도차이나반도에서 흔한 일이지만 좀 과하더라.
내가 보기에는 정원이 12명 정도로 보이는 차에 25명 정도가 올라탔고, 마지막 결정타는 운전석에까지 사람을 태우는 것이었어. 그러니까 운전자와 승객이 운전석에 함께 앉았다는! 결과적으로 난 맨 뒷좌석의 왼쪽 끝으로 바짝 몰렸고, 공교롭게도 그 자리 밑에는 커다란 짐이 놓여 있어서 난 다리를 접은 채 짐짝처럼 실려가야 했다. 그때의 내 모양새는 차곡차곡 잘 접은 3단 우산같달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피커가 내 왼쪽귀 바로 옆에 있었으니 상황은 최악에 가까웠단다. 동남아 여행을 해봤다면 알겠지만, 이 동네 버스들의 스피커는 노래와 만담으로 항상 찢어질 듯 하거든.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봉고차가 스퉁트렝(Stung Treng)이란 마을에 서더니 나를 큰 버스로 옮겨 타게 한 거야. 버스에 탄 사람은 캐나다 청년과 나 그리고 국적불명의 서양여자와 그의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캄보디아인, 이렇게 4명이 전부였다. 널찍하게 두 자리를 차지하고 편안하게 잘 달리고 있는데 버스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한 캄보디아 청년이 티켓을 보여달라는 거야. 난 티켓을 받은 적이 없다고, 그냥 버스에 타면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는데, 당연히 티켓이 없으면 돈을 다시 내야한다는 답변이 돌아왔지. 배낭을 뒤져서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그 친구가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나서야 난 무임승차의 혐의를 벗을 수 있었어. 진땀께나 흘렸다...
섬에서는 환전을 할 수 없다는 거짓말에 속아 어처구니 없는 환율로 돈을 조금 바꿨고, 분명히 수수료가 없을 입출국 도장을 받는데 6달러나 줬다. 따질까 했지만 어서 빨리 국경을 넘고만 싶어서 그만뒀어. 그렇게 국경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고, 작은 선착장에서 구명조끼도 없는 작은 나무배를 타고 이곳 돈뎃에 들어온거지. 평화로운 섬에서 해먹에 실려 흔들거릴 수 있는 지금이 어찌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며칠 쉬다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까지 쭉쭉 올라갈 생각이야. 라오스는 또 어떤 곳일까. 국경을 넘을 때마다 여행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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