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된 교수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고 야구망망이로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대학교수 장모씨(52) 사건은 최근 대학사회 흐름과 맞물려 있다. 요즘 교수들은 대학 구조조정에 내몰려 ‘벤처기업 사장’, ‘취업 알선자’의 역할을 강요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강씨 같은 일부 교수들은 교수이자 사장으로 군림하며 ‘슈퍼갑질’의 일탈에 빠진다. 장씨 역시 자신이 대표를 맡은 학회 사무국에 제자를 취업시켜 놓고 “일을 잘 못하고 실수가 많다”며 괴롭해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제자에게 교수이자 ‘사장’으로서 군림하며 장씨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고, 피해자인 제자는 앞으로의 진로가 두려워 그의 가혹행위를 수년간 견뎌야 했다.
■사장님이 된 교수님
2000년 정부는 국가혁신체제 구축을 위한 ‘산학협력’을 강조했고, 그 뒤 10여년간 산학협력을 교육·연구와 동등한 대학의 주류활동으로 정착시켰다. 2013년 기준으로 교수가 창업한 업체는 전국 42개 대학, 72개 기업이다. 한창 때에 비해 학내 벤처의 증가세는 꺽였지만, 지금도 많은 교수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창업을 시도하고 있다.
교수들이 ‘사장’이 되면서 전통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미묘하게 뒤틀렸다. 스승의 권위에 ‘고용주’의 귄위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기업을 차린 일부 교수들은 대학원 제자들을 자신의 회사에 데려가 싼 값으로 일을 시키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의 한 관계자는 “사업체를 차린 교수들을 모시는 경우 교수님과의 관계를 ‘고용관계’처럼 보는 학생이 많아졌다”며 “교수들도 학문적 욕심보다 자신의 성과를 중시하다보니 학생을 그렇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내 벤처의 ‘돈’ 문제로 인한 사고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인분 교수’ 사건이 나기 전인 지난 2월 서울대의 한 교수는 2억원의 연구비를 유용해 자신의 회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한 의혹을 받았다. 당시 이 교수는 대학원생에게 주는 인건비를 실제보다 부풀려 신고한 뒤 산학협력단이 인건비를 지급하면 학생들에게서 돌려받아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방식으로 모은 인건비는 자신이 설립한 벤처회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소재 대학에 근무하고 있는 한 교수는 “교수들이 회사를 차리기 시작하니, ‘잿밥’에 눈이 먼 교수들도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인분교수처럼 이익 때문에 학생들을 착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취업알선자’ 노롯도
지난 4월 부산의 모 사립대에서는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한 교수가 제자들에게 취업을 알선한 뒤 수개월간 돈을 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학 측에 따르면 문제의 교수는 학생들에게 해외 인턴이나 통·번역 관련 일들을 소개하고, 최소 2명의 제자에게서 3∼4개월간 1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학생이 돈을 주지 않자 취업한 기업에 전화해 돈을 요구했다”는 피해자 진술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취업알선자’로 내몰린 교수들의 현실이 깔려있다. 취업률은 현재 대학들의 구조개혁 평가에서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심지어 교수의 재임용이나 승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방학이 되면 많은 교수들이 기업 인사담당자를 찾아다니며 학생을 취업시켜달라고 요청한다. 일부 교수들은 편법을 쓰거나 학생의 장래를 고려하지 않은 취업을 종용할 때도 있다. 학생과 교수간의 취업 소개가 언제든 고소·고발로 이어지기 쉬운 이유다.
교수들의 취업 알선 역할이 강화되면서 제자들과의 ‘갑을 관계’도 강화되고 있다. 최근 취업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며 많은 학부 졸업생들이 대학원으로 왔고, 교수 대비 대학원생의 수는 더욱 많아졌다. 홍익대 대학원 총학생회의 한 관계자는 “교수 1명당 맡게 되는 대학원생들이 많아져 교수들이 학생들의 진로를 다 책임져주기 힘들어졌다”며 “이렇게 되니 제자들을 방임하거나 혹은 소수의 학생을 잡아 ‘미래를 책임져 주겠다’며 종속시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학생들 역시 취업할 곳이 한정돼 있고, 경쟁자들이 많으니 그 ‘얼마없는 파이’를 얻으려 불이익을 감수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연구비 영업에 대학홍보 도우미까지
고려대에서는 지난 3월 교수들의 연구비 수주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학칙에 포함돼 논란이 됐다. 문제가 된 부분은 정부가 지원하는 ‘인문한국(HK) 지원사업’과 관련된 것으로, 이 사업을 진행하는 ‘HK연구소’ 교수들은 임용일 기준으로 5년간 연구소에 의무적으로 재정적 기여를 해야 한다.
교수들의 연구비 수주 압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대학 구조조정이 심화된 최근에는 프로젝트 수주가 교수 평가에 반영되면서 그 강도가 심해졌다. 연구비를 잘 따오는 교수가 좋은 교수로 인정받다 보니 대학원생에게는 공부 못지 않게 교수를 수행하는 일도 중요한 업무가 됐다. 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의 한 관계자는 “실험실 조교의 월급은 연구비에서 나눠받기때문에니 교수님의 관련 미팅을 아무래도 잘 수행해야 한다”며 “그러다보면 어쩔 수 없이 술자리를 가게 되는데, 술 드시면 간혹 문제되는 행동(성추행 등)을 하는 교수님이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최근 ‘대학입학 홍보도우미’로 차출되기도 한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신입생 정원을 채우는 것이 대학의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서울권 주요 사립대학도 산간벽지, 해외까지 나가 입시설명회를 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교수는 “요즘 대학은 생존을 걸고 학생들을 모집한다. 교수들도 연구 시간을 빼앗겨가며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대학원 총학생회의 한 관계자는 “교수들이 외부 활동을 하면 대학원생들도 같이 힘들어질 때가 많다”며 “요즘 대학원생들은 학업과 조교 일 외에도 다른 일이 많아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대학학회 회장인 덕성여대 윤지관 교수는 “대학평가 점수만 강조하는 요즘, 교수들의 ‘교수다움’에 대한 합의가 무너지고 있다”면서 “지식인으로서의 교수상과 문화가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비리나 일탈행위가 나타나기 쉽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
_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