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 친구들
중국 자전거여행 제16보[2015.05,03.일요일]
▲ 종루와 조금 떨어져 있는 고루(鼓樓)
▲ 종루의 야경
내일의 꿈을 꿰고 있는 청년들
최현석 군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도 했지만 뿌리치고 길을 떠났다. 가족은 넷. 부모님과 형, 형은 임용고사에 합격해서 교사로 근무하고 아버님은 아파트관리 소장님이란다. 그는 7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도 있는데 1년만 기다리라 하고 왔단다. 그 1년이 자기에겐 무한한 자양분을 공급하리라는 것을 확신 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말수가 적었지만 결기가 아주 대단한 청년이었다.
김민혁 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은 일단 접어두고 이 여행을 끝내고 군대를 갔다 와서 대학에 입학, 고등학교 때부터 정성을 들였던 영화 촬영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여행이 끝나면 군대를 갔다 와서 프랑스로 유학을 가겠단다.
내일을 위해 쓸 구슬을 하나하나 꿰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둘다 술도 좋아했다. 민혁은 예쁘장한 얼굴에 웃음을 살살 띄우면서 눈치도 아주 빠른 영민한 친구였다. 민혁 군은 칭따오에서 2주간 머물러 있던 현석이를 만나 같이 정저우를 거쳐 시안까지 왔다.
출발일자는 나와 거의 비슷했다. 그 동안 둘이 칭따오를 나오면서 야영을 많이 했단다. 민혁은 돈 4백만원으로 자전거 사는데 2백을 쓰고 나머지로 세계여행을 시작한 배짱 두둑한 친구다. 일할 데가 있으면 돈 벌어가며 하겠단다. 두 사람은 내가 자전거 교육을 받은 바이클리의 동기였다.
이날 이 친구들을 데리고 ‘심봤다’와 같은 종류의 가게에 가서 밥을 먹였더니 출발 하고 가장 맛있는 밥을 먹었다면서 즐거워했다. 우리는 회족 거리와 종루, 고루의 야경을 보며 사진을 찍고 놀다가 호스텔 앞으로 돌아와 밤 늦게까지 빼주를 마셨다. 꿈과 사랑, 눈물과 한숨이 교차하는 이야기 마당이었다.
2015.05.04. 월요일
중국은행에서 돈을 찾다
오전 11시 현석이와 민혁이가 호스텔로 왔다. ‘심봤다’ 가 오전 11시나 되어야 장사를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남문에서 북문을 향해 가다가 종루에서 우정국 뒤로 해서 ‘심봤다“를 찾아갔다. 아침 일찍부터 가게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저녁에도 같은 업종의 다른 가게들은 손님을 받았다. 어제도 우리는’심봤다‘에 왔다가 반찬이 떨어져 다른 가게로 갔었다.
“저 친구(심봤다 주인)는 도무지 개선할 줄 모르는 것 같아.”
4월 27일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다녔으니 벌써 8일째건만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 외면하고 옆집으로 갈까 싶어도 차마 그 집을 지나가기가 미안해 계속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밥 먹고 시앙지먼 유스호스텔로 갔다. 물건은 아직 오지 않았다. 돈이 떨어져 은행에 가려고 하니 현석이가 자기가 가서 도와주겠단다. 이틀 전에 돈을 뽑아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중국공상은행에 갔더니 한국에서 설명 들을 때와는 다르게 화면 모두가 간자다. 간자는 일일이 써야 한다. 현석이도 이것 때문에 몇 군데 은행을 거치며 검색을 하느라고 많은 시간이 걸렸단다. 혼자 왔더라면 나는 중국어 사전을 내어놓고 한바탕 소동을 피우며 몇 번이나 실패했을 것이다.
▲ 돈 빼고 카드를 빼라는 문자를 누르지 않으면
기계가 카드를 먹어버려 여행이고 뭐고 엉망이 된다.
▲ 별 것 아니다 싶어도 남의 나라에서 별 것도 아닌것이 여행을 망치는 것이다.
영어와 같이 나온다고 영어를 프린트해서 가져 갔는데 영어는 무슨 영어, 하하
민혁이는 여행에 필요한 여러 사이트들을 소개해 주었다. 일단 컴퓨터 즐겨찾기에 모두 저장해 놓고 모바일에도 페북을 뚫는 앱도 받아 주었다. ‘바이두’ 와 비슷한 고덕지도와 오프라인에서도 GPS로 사용가능한 지도인 osmand도 쓸 수 있도록 정리를 해주었다. 밥값 술값 두어 번 부담을 했지만 열 번을 사줘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직 아날로그 방식을 택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인 것이다.
이 젊은이들과는 문제해결의 접근 방법부터 다른 것이다. 나는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많은 시간을 헤매었을 것이다. 준비도 너무 부족했다. 이젠 모두가 모바일로 해결하고 컴퓨터로 해결하는 시대이다. 여기에 창과 방패로 무장한 채 돈키호테처럼 나타났으니 어려움이야 불문가지인 것이다. 혼자서는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우리의 삶 자체가 혼자서는 못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 인간 천연의 사슬이여.
▲ 고루쪽 에서 본 종루
▲ 삔관에 짐을 풀어두고 온 두 친구, 호스텔 앞 주작문 앞에서
중국 술집엔 술을 갖고 가 마셔도 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는 술이 최고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으니 여기 왔다고 갑자기 변할 리는 없다. 근데 중국의 보통 술집은 자기가 먹고 싶은 술을 사가서 먹어도 된다. 그러니까 술집에 가서 술은 안 시키고 자기가 좋아하는 술을 사 가지고 가서 먹어도 된다는 말이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도 술이 먹고 싶으면 술을 사가지고 가서 밥 먹으며 마시면 된다는 말이다. 우리로서는 좀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왜 이런 문화가 형성 되었을까?”
“예전에 말입니다. 중국의 술집에서 파는 술이 믿을 수가 없었대요. 그래서 술은 자기가 들고 가서 마시는 풍습이 생겼대요.”
물론 이 말은 현석이의 말이다. 하지만 그럴 듯한 이야기다. 어쨌든 우리는 자리에 앉아 꼬치만 시키고 우리가 사가지고 간 빼주로 값싸게 술을 즐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주인이 싫은 내색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몇 번 그런 것을 보고나니 우리도 의례히 그러려니 하고 형편에 맞춰 마시는 것이었다.
“술은 중국에서 마시는 것이 좋겠어. 하하.”
시앙지먼 유호스텔에서는 칭따오 맥주 작은 것 한 병을 15원이나 받아 나를 분노에 떨게 했는데 마트에 가서 사면 큰 병이 3원이다. 이 아니 좋을소냐.
식당도 가격 편차가 심하다. 호스텔에서 사먹은 볶음밥은 무려 30원이었다. 볶음밥 달랑 한 그릇이 나온다. 밥이 목구멍에 걸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웃지 마시라, 기간도 소요 경비도 모르는 여행을 하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데 오늘 아침 혼자서 ‘심봤다’ 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점심 저녁 세 끼를 30원 주고 사 들고 오는 그 행복감을 아는가. 볶음밥에 비하면 ‘심봤다“의 맛과 질과 양은 견줄 수가 없이 좋았다.
중국인들도 연장자에 대한 공경이 우리와 같았다. 물론 아들과 아버지가 담뱃불을 나누는 모습은 아직 눈에 설지만 잔을 연장자 컵의 아래 부분에 갖다 대며 건배를 하는 풍습은 우리와 같았다.
벌써 며칠째야? 물건을 기다리는 것에만 신경을 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형편, 그렇다면 나는 이 시간도 뜻 깊게 보내고 싶다. 여행이란 그런 것.
▲ 시안 성벽 옆에 걸린 홍등
▲ 보름달이 비치는 남문
▲ 종루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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