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꿈의 기록 ‘서브3’에 도전하는 마라토너… 과연 무릎․발목이 성할까?
맨발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서브3(마라톤 풀코스 3시간 이내 완주) 10개 기록을 세워 기네스북에 올립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 맨발로 달리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꼭 목표를 달성할 계획입니다.”
맨발 마라토너 이한기(50)씨의 맨발로 달리는 이유에 대한 변(辯)이다. 이씨가 맨발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축구와 헬스 등 운동 마니아인 이씨는 특히 축구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거의 마라톤하다시피 공을 쫓아다녔다. 드리블하는 사람을 쫓는 게 아니라 오직 공 하나만 따라다닐 정도였다. 동료들로부터는 “유별나다”며 핀잔 듣기 일쑤였다.
▲ 한국의 아베베를 꿈 꾸는 맨발의 마라토너 이한기씨가 대전 계족산 맨발축제 때 열린 단축 마라톤 대회에서 골인을 앞두고 있다.
왼발 접질려 치료하다 맨발로 걷기 시작
운동장을 쉼 없이 누비며 뛰어다녔다. 그러다 왼발을 심하게 접질렸다. 걷지 못할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일어서지 못할 상태였다. 병원에서 수술을 권했다. 그는 자연치유 신봉자였다. 자연스레 병원보다는 한의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수술을 하지 않고 한약을 먹고 맨발로 걸으며 근육을 키우는 자활치료를 선택했다. 맨발로 잔디밭을 걸으니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발목의 혈액순환도 잘 되는 느낌이었다. 여태 쫙 조인 축구화를 벗으니 완전 해방된 듯했다. 그게 2011년 즈음이다. 이때부터 이씨는 그동안 발을 구속했던 신발을 벗고 맨발로 훨훨 날기 시작했다.
이씨가 마라톤을 시작한 건 그보다 더 오래전 일이다. 축구할 때 원체 공만 보고 쫓아다니니 주변에서 그에게 “그 정도 달리면 마라톤을 한 번 해보라”고 권했다. 마침 2004년 봄 부산 광안대교 개통 기념 하프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아무 생각 없이 덜컥 신청하고 출전했다. 준비운동이라곤 ‘ㅈ’자조차 떠올리지 않은 상태였다. 한마디로 마라톤을 우습게 본 것이었다. 달리기 수준으로 본 마라톤 첫 출전은 그에게 큰 충격과 더불어 교훈을 안겼다. 그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너무 숨차서 죽을 뻔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달리기같이 앞줄에 서면 유리한 줄 알고 처음부터 앞장섰다. 3~4km 뛰니 계속 달릴 만했다. 지치는 줄 모르고 달리고 또 달렸다. 1만여 명 출전한 선수들 중 앞쪽에서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쉼 없이 달려 첫 완주 테이프를 끊었다. 하프로 출전한 첫 대회 기록은 1시간40분대였다. 기록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숨이 너무 차서 정말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대로 덜렁 누웠다. 아플 기력도 없이 하늘이 빙빙 돌고 광안대교가 흔들흔들 하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여유만만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완전한 오버페이스였다. 그러면서 그는 “마라톤이 이런 거구나. 너무 힘들다. 축구하면서 재미삼아 골 넣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구나. 산에도 재미삼아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마음적으로는 의미를 두고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하프마라톤 첫 출전을 ‘속았다’ 생각하고 다시는 마라톤은 안 하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또 그에게 감언이설로 꾀는 듯했다.
“너는 너무 무작정 뛰어. 그렇게 뛰어선 좋은 기록 내기 힘들어. 내 말대로 하면 1시간 30분대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어.”
하기 싫지만 자질이 있다는 말에, 조금만 수정하면 된다는 말에 한 번만 더 출전하기로 했다. 그해 가을 다시 합천대회에 나갔다. 첫 출전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기록도 1시간 30분대로 단축했다. 기분도 좋아지고 우쭐하는 듯했다.
▲ 1. 대구 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이한기씨가 맨발로 질주하고 있다. / 2 부산 바다 하프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이한기씨가 맨발로 골인하고 있다. / 3 마라톤 출전하기에 앞서 이한기씨가 맨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밤에 운동장 105바퀴 돌기도… 고교생 수준 훈련 소화
이 합천대회를 계기로 축구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마라톤에만 매진하게 된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부산체고 마라톤 감독을 찾아가 “마라톤을 잘하고 싶다. 훈련방법을 가르쳐 달라”며 사정했다. 그 감독은 40세를 훌쩍 넘긴 이씨를 고교생 훈련시키듯 담금질했다. 오후 8시부터 12시까지 체고 운동장을 105바퀴 반을 돌도록 했다. 그게 마라톤 풀코스인 42.195km였다. 밤에 준비도 없이 감독이 하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완전히 달밤의 체조가 아니라 달밤의 마라톤이었다. 갑자기 준비도 없이 극심한 훈련을 소화하니 혈당이 급격하게 떨어져 운동장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마라톤에 미쳐 집에 들어오지 못할, 아니 영원히 불귀의 객이 될 뻔한 사건이었다.
감독이 가르쳐주는 대로 운동장 한 바퀴 돌고 나서 팔굽혀펴기 15개, 한 바퀴 돌고 윗몸 일으키기 15개, 100m 달리고 나서 서전트 점프하며 뛰기 등 달리기 사이사이에 체력단련과정을 그대로 소화했다. 그는 속으로 ‘내일 모레 50세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학생들 훈련시키듯해. 이 사람이 나를 시험해 보려고 하는 건가, 포기하라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묵묵히 따랐다.
이때까지는 신발을 신고 달렸다. 마라톤을 하다가 2011년 모처럼 한 축구에 발목을 접질리는 중상을 입어 치료과정에서 맨발로 바꾼 것이다. 그의 인생에 중대한 전환기를 맞은 사건이었다. 한국판 아베베로 탄생할지도 모르는 계기로.
맨발로 산길로, 모래사장으로, 잔디로 걷고 달리니 발이 너무 부드러웠다. 느낌도 좋았다. 해운대 모래축제 때 열린
단축마라톤 5km코스에 출전했다.
백사장을 뛰니 근육을 강화하는 훈련효과까지 가져왔다.
발바닥에 좋은 산길, 흙길 등을 찾아다녔다. 대전 계족산 황톳길걷기대회에 출전한 마라톤 대회서도 맨발로 완주했다.
어느 정도 근육을 강화한 뒤 드디어
아스팔트까지 맨발로 나섰다. 2011년 춘천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다.
3시간12분대를 기록했다. 첫 맨발 기록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체력이 회복될 시간도 주지 않고 보름 뒤 부산 다대포 마라톤대회에 다시 출전했다.
이번엔 3시간5분대였다. 서브3에 대한 희망이 보였다. 체력을 더욱 담금질했다.
마침내 2012년 첫 출전한 서울 동아마라톤대회에 2시간58분대를 돌파했다. 아마추어로서의 꿈의 기록인 3시간 이내에 처음으로 주파했다. 그것도 맨발로. 한국판 아베베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가을 대회에 또 출전, 이번에 1분을 더 단축한 2시간57분대를 기록했다.
사실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서브3’를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말 그대로 꿈의 기록이다. 마라톤 풀코스 내내 100m를 25초 이내 주파해야 가능하다. 그것도 맨발로 뛰는 데는 더욱 고통이 따른다. 거기에 지금 이한기씨가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봄엔 2시간56분대, 11월에 열린 중앙마라톤대회에 2시간56분48초를 기록했다. 기록도 점차 단축돼가고 있다.
지금 그는 맨발로 달리면서 맨발이 주는 장점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몸의 자동면역기능을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으며 스스로 면역기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치료보다는 예방이 제일입니다. 예방을 위해선 자생적 치유기능을 살려야 합니다. 자연식품을 먹는다든지, 운동을 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항상 몸 상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맨발로 뛰는 것도 그중의 한 방법입니다. 발은 제2의 심장이므로 옥죄지 말고 항상 튼튼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맨발로 걷고 뛰면 혈액순환에 도움되고 기분도 상쾌해지며 항상 튼튼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의약적 조치보다는 대체의약이 각광받는 시대이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예방이 최우선입니다.”
그도 물론 맨발이 주는 부담을 알고 있다. 키 173cm, 몸무게 64kg으로 걷고 뛸 때 오는 충격이 완충작용 없이 무릎과 발목에 고스란히 전달돼 연골과 관절이 쉽게 파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려한다. 그래서 그는 까치발서기나 발가락끝으로 서기 등과 같이 다리와 발목 근육을 키우면서 앞꿈치나 발 중간부분을 먼저 내디디면서 충격을 최대한 흡수하는 보법을 사용한다. 이 보법은 발바닥 지압점을 자극해 발의 유연성을 길러 주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느낌이다.
▲ 대전 계족산 맨발축제 때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이한기씨가 입상한 마라토너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내년엔 보스턴마라톤 도전
몇 년 동안 단련된 맨발은 군데군데 박힌 굳은살이 그 사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금은 신발을 신고 뛰는 것보다 맨발로 뛰는 게 훨씬 편한 정도가 됐다. 축구할 때도 신발 신고 뛰면, 특히 옛날 다쳤던 왼발은 더 힘든 실정이다.
반면 스포츠건강의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서울아산병원 진영수 교수는 “신발은 신체 하중의 20~30%를 흡수하지만 맨발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발목과 무릎관절로 전달한다. 맨발로 걷거나 뛰는 것 자체가 발바닥과 관절에 무리를 줘 족저근막염을 일으킨다든지, 피로골절을 불러올 수 있다”며 “뛸 때는 발목과 무릎에 체중의 2배에서 많게는 5배까지 부담을 준다. 까치발로 뛰는 주법도 첫 발가락과 중간 발가락에 골절을 일으킬 가능성과 족저근막염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맨발로 걷는 것은 적응여하에 따라 권장할 수 있지만 뛰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스팔트에서 뛰는 것은 절대 금지하라고 주문했다.
그의 이 같은 맨발보법에 대해 지난해 춘천마라톤 해설을 했던 마라톤 전문가 헬스조선 홍헌표 편집장은 “서브3는 아마추어에겐 마의 기록인 동시에 꿈의 기록으로 여겨지며 아마추어 최고수로 인정받는 기준이 된다”며 “그 기록을 맨발로 달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것을 이한기씨는 서브3 10회에 도전하고 있다.
“내년쯤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2015년이나 늦어도 2016년 초쯤 서브3 10회의 기록을 달성할 것입니다. 그 정도 되면 기네스북에 올려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기네스북에 올리기 위해 기록을 모으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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