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5년만에 1020원대 진입..투심악화에 현대차-기아차 급락
원/엔 환율, 5년만에 1020원대 진입..투심악화에 현대차-기아차 급락
엔화가치 약세가 한국 증시의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수출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이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에 고전할 가능성이 가시화되면서 증시 전반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21.42포인트(1.05%) 내린 2009.36포인트에 거래를 마감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659억원, 1598억원 순매도에 나서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이날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는 자동차주에 집중됐다. 자동차주가 속한 운수장비 업종에 대해 외국인은 281억원, 기관은 1311억원을 순매도했다. 기관은 기아차와 현대차를 각각 475억원, 457억원 순매도해 개별종목 중 가장 많이 팔아치웠다. 외국인 역시 기아차와 현대차를 각각 207억원, 191억원 내다팔며 순매도 종목 1, 2위에 올렸다.
이 같은 '쌍끌이' 매도 공세에 이날 현대차 주가는 전날보다 1만500원(4.21%) 하락한 23만9000원에, 기아차는 3100원(5.2%) 떨어진 5만6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처럼 외국인과 기관이 현대차와 기아차를 동반 매도한 직접적인 배경은 전날 발표된 11월 자동차 판매 부진 때문.
현대차의 11월 내수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1.9% 줄어든 5만4302대, 해외 판매량은 1.3% 감소한 35만4231대를 각각 기록했다. 전달에 이어 내수 판매 둔화가 계속됐으며 특히 해외 판매도 4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11월 기아차의 경우 내수 판매량은 12.3% 감소하고 해외 판매량은 2.2% 증가했다.
최근 내수 중심으로 판매 둔화가 가시화돼 온 가운데 그나마 판매량 둔화를 막아줬던 해외 판매마저 감소하면서 투자 심리가 악화됐다는 지적이다.
국내 자동차업체의 경우 환율 변동에 민감한 수출주인데다 글로벌시장에서 일본 자동차 업체들과 경쟁하는 만큼 엔화약세와 원화강세가 동시에 진행될 경우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올해 초 엔저-원고 현상에 따른 실적 우려감에 자동차주가 급락하는 등 환율에 민감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날 오후 3시54분 기준 원/엔 환율은 1027.71원으로 지난 2008년 9월3일(1028.91원) 이후 처음으로 1020원대에 진입했다. 올해 초 1230원대였던 원/엔 환율은 지난 5월 중순 1078원까지 하락한 후 다시 1100원대로 올라섰지만 지난달 중순 이후 급락하며 1000원대를 위협하는 형국이다.
엔/달러 환율 역시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장중 103.37엔을 기록하며 연중 최고점(103.7엔)에 근접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이처럼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추가적인 양적완화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
최근 2000포인트를 회복하며 추가적인 '레벨업' 기회를 모색하던 한국 증시는 이 같은 엔화약세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10월 경상수지 흑자가 100억 달러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원화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어 엔저에 대한 충격은 더욱 크다.
엔저 공습에 따른 여파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된다. 11월 수출은 479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대비 0.2% 증가에 그쳐 컨센서스(3% 증가)를 크게 밑돌았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엔화 약세 및 원화 강세에 따른 원/엔 환율 하락세는 국내 수출경기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한국에 비해 일본의 수출증가율이 높은 신장세를 기록하는 등 엔화 약세가 점차 국내 제품의 대선진국 및 중국시장 점유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원/엔 환율하락으로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국내 수출 사이클에 미칠 영향"이라며 "엔화변수가 당분간 국내 증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자동차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엔저 공습에 우리 기업들이 받을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앞으로 원/엔 환율 하락이 지속된다면 국내 수출업체들에 대한 센티먼트(투자심리) 악화는 불가피하지만 실제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며 "과거에 비해 엔화 하락에 대한 기업의 이익 민감도가 축소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대부분의 국내 수출관련 기업들이 원/엔 환율 하락으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기업들의 엔화 노출도가 크지 않고 원재료비 절감 효과 및 일부 엔화부채 효과 등을 감안할 때 엔저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
_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