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銀 횡령,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 범죄'
국민은행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이 조사할수록 가관이다. 당초 한 부서에 오래 근무한 직원이 일탈 행위 정도로 파악됐지만 다수의 직원들이 연루된 '조직적 범죄'의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내부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곪아 있다는 의미다.
연루 직원 최소 10여명 이상
= 지난 23일 언론보도를 통해 횡령사건이 알려지자 국민은행 내부에서는 "90억원을 2~3명이서 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들이 돌았다. 국민주택채권이 통상 수백만원~천만원의 소액 채권이어서 이를 위조해 90억원을 횡령하려면 최소 1000번은 위조 채권을 창구에서 교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영업점 한 직원은 "이 지점에서 4년을 근무했지만 창구에서 국민주택채권을 교환하는 고객은 1년에 한 두번 밖에 못 봤다"고 말했다. 그만큼 흔치 않은 경우인데 영업점 직원 1~2명이 그 많은 채권을 다 교환해 줬다면 분명 이미 다른 직원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확인 결과, 이 같은 의혹은 사실이었다. 현재까지 금융감독당국의 특별검사와 국민은행의 자체검사 결과, 최소 10여명 이상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주범으로 알려진 주택기금부 소속 박모씨 외에 핵심 연루자인 영업점 직원 2명, 그리고 7명 정도가 조사를 받고 있다. 국민은행 자체 감사 대상에는 40여명이 올라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주범 박모씨가 횡령액 90억원 중 70억원을 챙겼고 공모한 영업점 직원 2명이 10억 여원, 나머지 연루 직원들은 수천만원 정도씩을 받고 범죄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정도면 직원 1~2명이 작정하고 비리행위를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 조직적 범죄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통제 엉망..감찰반 직원도 포함
= 국민은행 내부를 더 당황시킨 것은 이번 사건 연루자 중에 감찰반 직원까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은행장 직속으로 직원들의 비위행위를 조사해 은행장에게 보고하는 직원이 비리에 동참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직원이 감찰반에 소속돼 있는 기간에 이번 사건에 동참했는지 아니면 과거 다른 부서에 근무하던 시점에 연루됐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감찰반 직원까지 연루됐다는 것은 국민은행의 내부통제시스템이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도쿄지점 불법대출 및 비자금 조성 사건처럼 이번 국민주택채권 위조사건이 수년간에 걸쳐 계속됐지만 적발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이같은 내부통제시스템의 붕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잇따라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 사건과 관련 국민은행 조직 문화에 큰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은 돈을 만지는 업(業)이다 보니 항상 금융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사고를 줄일 수 있느냐 여부는 내부통제시스템과 직원들의 윤리의식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은행은 그동안 경영진의 잦은 교체와 이에 따른 정치화된 조직 문화 등으로 인해 직원들의 윤리의식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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