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삼성 편중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 상반기 기업 실적을 꼼꼼히 살펴보면 재계 전반의 실적 부진과 함께 우리 경제의 '삼성 편중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500대 기업에 포함된 293개 기업 실적을 분석한 결과 상반기 총영업이익은 54조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8.6% 성장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 그러나 실적 개선의 상당 부분을 삼성전자가 가져갔다는 데 함정이 있다.
삼성 계열사 15곳의 총영업이익이 20조1966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37.6%나 급증했다. 특히 삼성전자(50.7%)의 실적 상승폭이 컸다. 그 외 SK, LG, 롯데 등 최상위권 그룹 몇 곳만이 유의미한 실적 개선을 보였을 뿐 대다수 그룹은 상황이 악화됐다. 5대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15.2% 줄고 매출은 1.6% 감소했다.
5대 그룹 안에서도 현대자동차그룹은 내수시장 침체, 노조파업 등으로 영업이익이 9.1% 감소했다. 포스코, 현대중공업, 두산은 각각 -10%, -56.1%, -37.4%를 기록했다. GS그룹은 GS건설의 대규모 손실로 138억원 적자로 전환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른바 '삼성 착시효과'로 인해 전체 숫자만 봐서는 우리 경제의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는다"며 "삼성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에 밀려나고 있으며 이것이 실적의 양극화로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양대 지주로 불리는 현대차와 삼성전자도 위기감 속에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이미 상반기 현대차그룹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9.1% 감소했다. 또 현대차의 판매가 9월 들어 하락세로 접어드는 등 재계 전체로 실적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은 기록상의 실적은 매우 훌륭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대두되며 위기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1일 발표된 9월 자동차 판매실적 집계 결과, 현대차 판매량은 총 36만3970대로 나타나 전년 동기보다 2.1% 줄어들었다. 월별 현대차 판매량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13개월 만에 처음이다.
국내 판매량을 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9월 현대차의 내수 판매량은 4만6257대로 전년 동기보다 19.6%나 급감했다. 현대차 내수 판매량은 2개월 연속 5만대를 밑도는 셈이 됐다. 그나마 중국 등 신흥국 판매 호조에 힘입어 해외 판매가 1.1% 늘어나 전체 감소율을 축소시켰다.
하지만 해외 판매 증가세 역시 주요 메이저 업체 상승세에 크게 못 미친다. 기아차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달 기아차 내수 판매량은 3만2123대에 그쳐 전년보다 9.7%나 감소했다.
현대차는 해마다 반복되는 국내 노조 문제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지난해 노조 파업으로 현대차는 8만2000여 대, 금액으론 1조7048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올해 상반기엔 주말특근이 이뤄지지 않아 8만3000여 대(약 1조7085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하반기에도 노조가 파업을 강행해 5만여 대(1조225억원) 생산차질을 빚었다. 올해에만 노조 문제로 2조원이 넘는 타격을 입었다.
실적은 좋지만 삼성도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이후 뾰족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그룹 전체적으로 위기감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게다가 헬스케어, 바이오 등의 신수종 사업은 아직 그룹의 견인차를 못해주고 있기 때문에 고민이 깊다.
삼성 관계자는 "주요 임원들이 새벽에 출근하며 글로벌 경영 흐름에 맞춘 것도 1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적응하고 있는 수준이다. 글로벌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아직 멀었다는 인식이 많다"고 말했다.
삼성의 다른 관계자는 재계가 최근 어려움에 빠져 있는 것은 정부 규제가 지나치게 '대기업'에 집중돼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고쳐야 할 국내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이 많지만 정부가 나서 규제하는 것은 중소기업에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왜곡하고 외국 기업들이나 컨설팅 업체들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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