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밀린 일본 日 조선, 해외 M&A 나선다
1970~80년대 세계 조선시장은 일본천하였다. 일본은 '용접ㆍ블록 공법'이란   신기술을 앞세워 조선산업의 권좌를 유럽으로부터 빼앗아왔다. 이 공법은 기계구조물을 이용해 강철판을 결합하던 '리벳건조 방식'에서 벗어나 열과 압력을 가해 반영구적으로 고정할 수 있는 기술. 용접 공법은 1920년대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으나 대규모 선박건조에 접목한 것은 일본이 처음이었다. 때마침 1차 오일쇼크가 터지며 유조선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자 일본은 이 혁신기술을 무기로 수주물량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현재 일본 조선산업은 초라하기만 하다. 8일 영국의 조선ㆍ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일본의 수주금액과 수주물량은 각각 28억860만달러와 165만6,864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에 불과했다. 한국(188억9,550만달러ㆍ520만345CGT)과 중국(101억9,100만달러ㆍ497만9,366CGT)에 비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일본 조선업의 몰락은 IT산업 추락의 판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선 기술력에 도취돼 새로운 수요가 요구하는 혁신 개발에 소홀했다는 것. 조선협회 관계자는 "일본은 석유파동을 계기로 신형 선박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자 설계표준을 완성하고 틀에 박힌 설계에 따른 선박 제작만을 고집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조선업체들은 1970년대 말 표준 설계도가 만들어지자 정부주도로 구조조정을 단행, 설계인력을 대폭 감축했다. 정형화된 설계 도면이 있는 만큼 선박을 건조할 때마다 일일이 설계를 담당할 고급 인력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액화천연가스(LNG)선,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 하역시설(FPSO) 등 고부가가치 설비가 신규 시장을 형성하게 되자, 인재 부족의 일본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 경기가 침체된 와중에도 그나마 틈새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일본 업체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엔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가격 경쟁력마저 상실, 기존 시장까지 내주고 말았다.
최근 불고 있는 생산시설 감축과 '탈 일본' 바람은 위기 탈출을 위한 일본 조선업계의 몸부림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중공업은 인도의 조선사인 'L&T조선'의 지분 51%를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하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인건비가 싸고 구 모델인 상업용 선박 수요가 많은 신흥 시장에 거점을 마련해 수익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앞서 지난 6월 미쓰비시중공업은 고베조선소의 상선 생산을 중단했다.
가와사키중공업도 지난 5월 브라질 조선사 EEP와 900억엔을 들여 현지에 대형 조선소를 건립하는 합작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또 가와사키와 미쓰이조선 등 일본 4대 조선업체는 지난 7월 10년 만에 생산규모를 120만GT(총톤수) 줄이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일본 내 건조물량의 7%에 해당하는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인수합병 시도 자체가 기술력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해 왔던 일본 조선업체들에는 대단한 굴욕으로 일본은 이제 조선강국의 명맥을 이어가기는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면서 "기술혁신과 시장흐름을 외면한 일본의 사례를 우리 조선업계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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