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일간 한국이 준 음식은 세 끼 모두 치킨버거 감성팔이 경향신문답다
http://news.nate.com/view/20120801n35362?mid=n0411
ㆍ한 에티오피아 난민의 ‘출국대기실 악몽’
2004년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터미널>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는 미국 뉴욕 JFK 공항에서 9개월을 갇혀 지낸다. 동유럽 소국에서 부푼 꿈을 안고 미국땅을 밟았지만 고국이 쿠데타로 공중분해되면서 졸지에 무국적자 신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뉴욕으로 나올 수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신세가 된 그는 공항 안에서만 살아야 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이 실제 일어났다. 에티오피아 소수민족인 오로모족 출신의 ㄱ씨(32)는 2010년 6월 고국을 탈출했다. 정부군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고문까지 당한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케냐로 탈출한 ㄱ씨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국제난민협약국인 한국에 난민신청을 하면 살 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여권 브로커에게 위조여권을 구한 뒤 지난해 5월14일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새 삶을 살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ㄱ씨는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난민신청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는 난민심사도 받지 못한 채 곧바로 입국불허자들을 모아놓는 공항 내 출국대기실로 넘겨졌다. 그가 공항에 도착한 뒤 위조여권을 찢어버렸기 때문에 신원확인이 불가능했다. 또 항공권상 최종 목적지도 한국이 아니었다.
▲ “창문 없고 사방이 막혀
작은 의자에서 쪽잠…
사실상의 감옥이었다”
▲ 고국으로 강제송환 중
태국 난민단체 도움으로
1년9개월 만에 난민 지위
ㄱ씨는 이튿날 출국대기실로 찾아온 법무부 직원에게 난민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날 찾아온 다른 직원에게는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겠다’는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는 “출국대기실에 있는 동안 한 한국인으로부터 ‘네 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면 넌 여기서 굶어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굶어 죽느니 총에 맞아 죽는 게 낫다는 생각에 돌아가겠다고 썼다”고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했던 에티오피아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그의 입국을 불허한 것이다.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통상 강제 송환되는 사람들이 1~2일 정도 머무는 대기실에서 그는 꼬박 두 달 반을 기다려야 했다.
20~3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출국대기실엔 창문도 없었다. 잠은 의자에서 잤다. 가끔 항공사 직원에게 부탁해 라면을 사먹었지만 대기실 측이 제공한 음식은 세 끼 모두 치킨버거 한 종류였다.
ㄱ씨는 “출국대기실에 있는 동안 어떤 한국인들은 나를 범죄자로 부르고 ‘너는 한국에 필요 없다’는 식의 모욕적인 말도 했다”며 “대기실은 사실상 감옥이었다”고 말했다.
출국대기실은 한국 영토지만 입국심사대를 통과하기 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국내법 적용이 애매한 일종의 ‘국제지역’이다. 관리도 법무부가 아니라 항공사 단체가 위탁업체에 맡긴다.
ㄱ씨는 7월 말 한국 법무부의 신원확인을 거쳐 어렵사리 에티오피아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로 강제 송환되던 도중 그는 경유지인 태국 방콕공항에서 또다시 발이 묶였다. 에티오피아 항공이 그의 탑승을 거부했다. 또 태국 외국인보호소에 7개월간 묵어야 했다. 그는 태국의 한 난민단체 도움을 받아 유엔난민기구에 난민지위 신청을 했다.
태국 정부는 그러나 “국제난민협약국이 아니다”라면서 그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다시 뉴질랜드로 짐 보따리를 싸야 했다. 1년9개월 동안 4개국을 전전한 끝에 최종 귀착지인 뉴질랜드에 안착한 것이다.
ㄱ씨의 이 같은 기구한 사연은 태국 인권단체들을 통해 한국에 알려졌다. 그는 국내 법률 대리인인 김종철 변호사를 통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태국에서 ㄱ씨를 직접 면담한 김 변호사는 “난민신청을 하려는 사람을 살해 위협이 있는 본국으로 되돌려보내는 것은 강제송환금지원칙에 반하는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공항 출국대기실에서 ‘난민신청을 하려는데 안내를 해주지 않는다’는 전화가 많이 온다”며 “출국대기실은 접근조차 제한된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덧붙였다.
ㄱ씨는 한국 법무부에 대해서도 불만을 얘기했다. 그는 “법무부 직원이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겠다는 진술서를 쓰라’고 권유했다”며 “출국대기실에 있는 동안 항공사 직원을 통해 난민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ㄱ씨에게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라고 권유한 적이 없다”며 “그에게 추가로 받은 난민 신청서도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ㄱ씨가 진술서에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겠다고 밝힌 이상 그를 송환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ㄱ씨의 진정에 따라 항공사와 법무부 관계자를 상대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조만간 조사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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