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 지역 이슈](1) 원전 : 부산· 경주· 울진· 영덕· 삼척
원전 지역이 4·11 총선을 앞두고 들끓고 있다.
부산, 경주, 울진, 영덕, 삼척 등 원전이 가동 중이거나 신규 건설 후보지로 선정된 지역을 묶는 동·남해안 탈핵 운동 벨트까지 형성될 기류를 보이면서 원전문제가 선거판도를 뒤흔들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소식에도 "집안 단속이나 잘하라"며 쓴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 등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 기장군의 주민들은 격앙돼 있었다. 27일 고리원전이 바라다보이는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 장터에서 만난 주민 조영식씨(58)는 "정부에서 계속 고리 1호기를 가동하기 위해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는데 국민을 또다시 속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9일 정전사고가 발생한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과학기술부는 2007년 12월 설계수명 30년이 끝난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해 2017년까지 계속 가동을 허가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주민 박민석씨(32)도 "부산시의회도 고리 1호기를 폐쇄해야 한다고 했는데 국회의원이라면 여야를 떠나 고리 1호기를 막아줘야 한다"고 거들었다.
장터 곳곳에선 고리 1호기 폐쇄 공약을 내놓지 않은 후보를 성토하는 격한 표현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해 해운대·기장을 선거구 후보 5명 중 유창열(민주통합당), 구자상(녹색당), 김동주(무소속) 후보 등 3명은 고리 1호기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주민 김성호씨(53)는 "기존 정당의 경우 분위기에 편승한 것으로 보이지만 원전을 폐쇄할 수 있는 정당은 녹색당으로 본다"고 말했다.
월성원전과 방폐장을 바라보는 경주시민들의 반응도 대체로 싸늘했다. 이날 경주시 양북면 어일리 어일시장 입구에서 만난 주민 고수호씨(40)는 "낡은 원전 때문에 불안해 하는 주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정부에서 올해 말로 수명을 다하는 월성 1호기를 연장가동하려는 것 같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일부 주민들은 "이번엔 반드시 표로 심판하겠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경주시의회도 방폐장 공사 중단과 월성 1호기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김일헌 경주시의회 의장은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을 시의회 전체 의원들의 뜻을 모아 반대한다"면서 "수명연장을 전제로 이미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원자로(압력관)를 교체해 놓고 난 뒤 '수명연장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주와 부산 기장(고리원전) 사이에 낀 울산 울주군 지역의 반핵 정서도 커지고 있다. 울주군의회는 지난 21일 '원전 안전관리 특별강화와 고리 1호기의 즉각 폐기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최길영 군의원(60·새누리당)은 "고리 1호기의 정전사고 은폐로 원전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울주군의원 10명 중 7명은 새누리당 소속이다.
신규 원전 예정부지로 선정된 경북 영덕과 강원 삼척에서도 반핵바람이 거세지긴 마찬가지다. 지역개발 논리에 밀려 초창기 묻히다시피 했던 원전반대 목소리가 총선을 앞두고 커지고 있다.
영덕군 창수면의 한 70대 노인은 "그동안 지역 간 갈등이 커질까 봐 다들 원전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걸 꺼렸으나 후보지인 영덕읍을 제외하고 다른 면지역은 반대하는 여론이 더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탈핵'을 내걸고 이 지역 선거구(영양·영덕·봉화·울진)에 출마한 녹색당 박혜령 후보(42)는 "그동안 많은 주민들이 내색은 못해도 원전을 반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면 원전문제가 점차 이슈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덕지역에서는 지역주민들 사이에 원전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대다수 후보가 입장표명을 유보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강원 삼척에서는 원전반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원전 신규 부지인 삼척 근덕면 주민 윤경희씨(45)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많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원전반대 집회에 참석하며 원전을 막아줄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며 "현재로선 원전 유치 찬반이 4 대 6 정도로 갈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도내 5개 언론사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4일과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삼척지역의 경우 읍·면·동별로 반대의견이 찬성보다 19.9~27.1%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원전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는 27일 총선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원전유치 찬반 입장을 받아 공개했다.
박응천(통합진보당), 이용석(기독당), 무소속인 최연희, 이화영 후보 등 4명은 원전유치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이재(새누리당), 김형순(무소속) 후보는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나 이 후보는 주민투표를 통한 결정을, 김 후보는 원전유치 찬성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지난 1월16일 천주교 대구, 부산, 안동,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중심이 돼 '동해안 탈핵 천주교 연대'를 출범시키는 등 종교계도 탈핵운동에 적극 가세하고 있어 원전문제가 이번 총선에 미칠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태근 울산시민연대 대외협력실장은 "1년 전 일본을 덮친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안전한 에너지원이라는 원자력발전의 환상에 경종을 울렸다"며 "모양새로 보면 원전의 안전성과 추가건설을 둘러싼 여야의 정책경쟁이 4·11 총선의 쟁점으로 부각될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원전이 필요하긴 한데 뭔가 찜찜한 시설이란 생각이 2012년 대한민국 국민의 원자력발전에 대한 판단으로 보인다"며 "이는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의 단면"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 '탈핵의 깃발'을 들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녹색당의 출현과 '탈원전 없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진정성을 의심한다'는 4대 종단의 목소리는 의미가 깊다"고 덧붙였다.
※ 4·11 총선 지역이슈 '원전' 르포에는 '경향신문 19대 총선 보도'의 김태근 자문위원(울산시민연대 대외협력실장)이 함께했습니다.
http://media.daum.net/issue/259/newsview?newsId=20120327215406233&issueId=259&page=1&type=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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